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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s : 국사책은 나에게 아무런 역사적 호기심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역사 소설이나 영화가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거기에 더 좋은 적은 해당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에 가보는 것이다.
나에게서는 조선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은 서울대 김호 교수님이 대학원 때 외부 강사로 초청돼 조선의 살인사건 기록을 강의해주셨던 때였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이었지만 조선시대는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자세한 사건 문헌이 남아있었고, 그 것에 대한 것을 읽는 것만해도 한편 한편 소설이었다고 생생하게 강의를 해주셨다.

나중에 책으로 쓴다 하셨는데 그게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가서 본 것 중에 자극받은 것은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 때문이다. 영월 캠핑 때 가게 된 곳인데 이 곳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 내가 유배지로 고른다면 여기를 고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후 나는 16세에 죽은 단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단종이 궁금하니 문종이 궁금했고, 아들이 세조도 궁금했다. 그래서 태종태세문단세~ 가 아닌 조선시대의 왕들...그리고 고려시대의 왕들을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왕들도 참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긴 하지만 탐관오리들과 외척세력, 당파싸움 사이에서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왕들도 많았고, 항상 독살과 암살에 시달려야 했다. 제대로 왕권을 휘두르려고 하면 오히려 호족들과 권문세가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어쩌면 왕들이 국사를 게을리하고 주색잡기에 몰두했던 것은 이런 현실과 괴리된 이상 속에서 견디지 못해서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암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변화는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의 영향으로 이뤄진 것 같다. 몽골이나 명, 일본,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에 기대어 내부적인 변화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광해를 보면 명에 대한 당시의 우리나라의 입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가 그런 것이 아닐까.
당파 싸움은 그대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고, 대역을 하는 광해군의 모습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대선을 몇 개월 앞 둔 지금 한번 더 중요한 선택이 오고 있다.
왕은 선택할 수 없지만, 대통령은 선택할 수 있다.
몇 백년이 지났지만 투표 시간을 늘리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과 천민에게 글을 읽히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없다.
투표는 정직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위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생각하고 그 분에게 표를 던지면 된다.

대통령 후보 모두들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네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꾸며내는 것이 아무리 TV와 신문으로 포장해도 다 보이게 되어 있다.

사소한 시시비비는 가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 큰 것을 보려면 그 사람이 했던 일들과 방향성을 보면 된다.
영화속의 우매한 백성이 내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처마와 한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점.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역사의식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광해는 영화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추천 : ★★★★☆

* 위키피디아를 보면 각 왕들의 이전 왕 다음 왕들에 대한 링크가 있고, 각 왕들에 대한 평가가 다방면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전후 관계를 파악하면서 살펴볼 수가 있다.

위키피디아 :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A%B4%91%ED%95%B4%EA%B5%B0

광해군(光海君, 1575년 음력 4월 25일~1641년 음력 7월 1일[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휘는 혼(琿). 선조(宣祖)와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위 옹립에 공이 컸던 대북파의 반발로 당쟁에 휘말리고 말았으며, 이후 서인(西人)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줄곧 인목왕후(仁穆王后)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패륜자로 일컬어져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전에 폐위되었기에 사후 시호는 없으며 살아있을 때 받은 존호는 체천흥운준덕홍공신성영숙흠문인무서륜입기명성광렬융봉현보무정중희예철장의장헌순정건의수정창도숭업대왕(體天興運俊德弘功神聖英肅欽文仁武敍倫立紀明誠光烈隆奉顯保懋定重熙睿哲莊毅章憲順靖建義守正彰道崇業大王)이다.

단종

단종(端宗, 1441년 음력 7월 23일 ~ 1457년 음력 12월 24일, 재위 1452년~1455년)은 조선의 제6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휘는 홍위(弘暐)이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암살되었다.
폐위되어 죽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채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다가 이후 중종 때에 복권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당했고, 숙종 대에 가서야 성리학자들의 건의로 정종과 함께 묘호와 시호가 올려져 정식 시호는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郭孝大王)이다. 세종의 장남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외아들이며, 조선 왕조 최초의 왕세손이기도 하다.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B%8B%A8%EC%A2%85
1452년부터 1455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452년부터 1453년까지 김종서가 섭정하였고 1453년부터 1455년 퇴위할 때까지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가 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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