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 : 백탑파 3편 열하광인. 2편 이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다행히 영은이가 책을 빌려줘서 빨리 볼 수 있게 됐다. 신판이 나온 것
같은데, 이전에 나온 것이 책도 작고 종이 느낌도 좋다,
어릴 때 추리소설 광인 형을 따라서 열심히 추리소설을 읽었다. 당시
어린이들의 꿈은 대통령 못지 않게, 소년탐정단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책에서 나오는 탐정들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왜? 내 주변에는 고대유물
분실사건, 밀실 살인사건 같은게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 미국, 영국, 일본 등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추리소설이 안나오는지?'도 궁금해 했다.
나중에 김성호 작가의 형사 오병호, Z의 비밀, 제5열
같은 작품을 읽었지만, 어릴 때는 홈즈와 루팡, 포우, 니주멘소 같은 외국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만을 읽어야 했다.
이후 추리소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는데, 이 백탑파 시리즈만은 추리소설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끌어올려 주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책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박지원이나 박제가에 대한 관심도 더 생겨서 다른 책들도 함께 읽어보려고 한다.
작가
김탁환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07년 9월 28일 320쪽
ISBN-13
9788937481314
ISBN-108937481316
http://www.yes24.com/24/goods/2711007
영화에서는 화광 김진이 등장하지 않아서 좀 아쉽다. 사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김진인데.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좋다.
p50. 홍인태가 하대를 쓰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남녀노소. 신분 격차를 막론하고 건공대매로 말을 높였다. 따진다면 종친인 내가 하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웬지 나도 홍인태를 입내내며 버텨보고 싶었다. 어떤 날은 나보다도 열 살은 많은 사내와 동년배처럼 굴고 또 어떤 날은 아예 셈들지 않은 막내 동생처럼 놀았다.
p63.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의금부가 좋다 매일매일 훈련만 반복하는 장용영보다 어제 한 일이 다르고오늘 할 일이 다른 의금부가 적성에 맞았다. 두려움의 상징인 의금옥이 정겹고 고깔모자를 쓴 나장들이 귀엽다.
p74. 열하는 단순한 연행의 기록이 아니다. 열하는 대국의 광대하고 세밀한 문물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열하는 소중화에 침윤된 조선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열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니다. 열하는 무릎을 세우고 쉼 없이 끼적이며 모은 단어와 문장들을 꿰지 못한 야광주처럼 나열한 것도 아니요 열하는 이미 사라진 것들을 향한 최대한의 배려도 아나다. 열하는 필담이며 기며 록이며 서이며 전이다. 시며 문이다. 열하는 그 전부도 아니요 이것과 저것의 부분적인 합은 더더욱 아니다. 하여 열하란 무엇인가. 열하는 열하다. 열하 이전에 열하와 같은 서책이 없었고 열하 이후에도 열하와 같은 서책은 없으리라. 이 꽉 짜인 동어반복에 숨이 막혀 오는 서책. 그것이 바로 열하인 것이다.
p208. 시력을 점점 잃어 가니 어둠과 친해진다네. 또한 빛과 어둠 사이에 걸쳐 있는 수많은 세상들과도 새로 만나지. 눈이 멀쩡할 때는 이것이든지 이것이 아니든지 둘 중 하나였네. 바위이거나 바위가 아니거나 참새거나 참새가 아니거나. 한데 그 둘 사이에는 수많은 세상이 숨어있더군
아니 숨은 적은 없지만 애써 찾지는 않았단 것이 정확한 말이네. 바위가 내 앞에 있다고 치세. 나는 그걸 보며 생각한다니. 바위 같은 것이 내 앞에 있구나. 하지만 저건 바위가 아닐지도 몰라. 가까이 다가가서 만지면 당장 바위인지 아닌지 알겠지만 그냥 거리를 둔 채 앉아서 본다네. 그리고 상상하지. 바위 아니라면 콧김을 뿜뿜 내뿜으며 나를 노려조는 멧돼지일까. 멧돼지가 아니라면 모진 바람에 줄기가 떨어진 늙은 소나무가 아닐까. 소나무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무덤일까. 무덤이 아니라면.
p213. 젓갈이 짜지 않다. 매살이 시지 않다. 찻잎이 쓰지 않다. 이런 책망을 하신다면 얼마든자 되살필 뜻이 있으이. 하나 소금. 매실. 찻잎을 일러 왜 너희는 겨자처럼 맵지 않느냐 꾸짖으신다면 이 세상에 맛난 음식은 사라지고 말 걸세
p226. 흉년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이. 한데 조정 대신과 자방수령들은 뒷짐만 진 채. 사람을 찔러죽이고서도 칼이 했지 내가 한 짓이 아니라며 딴청만 부린다네. 비대발괄하는 백성들 원성이 귀에 쟁쟁해. 지금 나서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
p255. 달의 몸뚱이는 언제나 둥글어 햇빛을 방 둘러 받고 보니. 아 때문에 자구애서 본 달이 찼다가 기울었다가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 저 달을 온 세계가 한 가지로 본다면. 보는 장소에 따라서 달은 살찌고 여위며 깊고 열음이 있지 않을까. 별은 달보다 코고 해는 땅덩이보다 크되. 보기에는 그와 달라 보이는 것이 멀고 가까운 것이 아닐까. 만약에 이것이 참말이라면. 해와 땅과 달들은 모두 허공애 둥둥 뜬 별들로 보임이 아닐까. 별에서 땅을 졸 때에도 역시 그렇게 보일 것이 아니겠는가
- 박지원 태학 유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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