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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BP/IT] 명량과 팬택

by bruprin 2014. 8. 11.




BP's :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화제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정보와 책을 나름대로 익혔었는데, 이상하게 영화는 기존의 내 생각 속의 이순신과 많이 다를 것 같아서 안보고 있다. 조선 12척 VS 왜국 330척이 아니라 조선 13척 VS 왜군 133척 이라는 등 일부 사실에 대한 차이가 있는데, 1척이 30척을 상대로 이겼다는 것이나 1척이 10척을 대상으로 이겼다는 것 모두 대단한 것 같다. 

명량은 전투에서 지휘관의 역량과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현대의 기업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명량전을 생각하면 최근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려고 하는 팬택의 상황이 떠올랐다.
제한된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삼성전자와 LG전자 글로벌 단말기 제조사와 경쟁하는 팬택이 흡사 명량해전을 매일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팬택은 1990년 설립된 휴대전화 회사로 무선호출기(삐삐)생산으로 성장한다. 1997년부터는 휴대전화 생산도 시작하고 2005년에 SKY  전화기를 생산하던 SK텔레텍을 인수했다.
011 시절 SKY 브랜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름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삼성전자 애니콜, LG전자 사이언 못지않게 SKY는 나름대로 브랜드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팬택은 SKY 브랜드를 인수한 뒤 2012년 SKY 브랜드를 버리고 베가라는 신규 브랜드를 쓰게 된다. 이건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기존 SKY 브랜드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는데, 왜 그걸 버리고 스트리트 파이터가 연상되는 베가 라는 브랜드를 선택했는지..

 팬택은 사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회사다. 삼성전자까지 가지 않더라도 LG전자 조차 힘겨워하고 있는 휴대전화 부문에서 휴대전화만을 판매하는 전문 회사. 
매년 전사 역량을 쏟아내 전략 제품을 1~2개씩 내놓고 승부하는 휴대단말기 시장에서 어떻게 보면 팬택은 초등학생이 직장인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대회에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팬택의 2013년 매출은 1조 3355억 9100만원, 종업원은 1976명이다. 다른 업체들은 단말기 이외의 제품들도 있기 때문에 매출액과 직원을 직접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삼성전자의 휴대단말기 사업이 포함된 IM사업부의 매출액은 138조8200억원, 영업이익은 24조9400억원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과 대결했다면, 팬택은 1.3척의 배로 138.8척의 배와 싸운 셈이다.(1:1 상황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팬택이 이순신 장군처럼 이길 방법은 없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제대로 된 전략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팬택으로 치면 이순신 장군에 해당하는 창업자인 박병엽 회장(지난해 사임)의 경력은 그야말로 입지적인 인물이다. 호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7년 맥슨전자에 입사해 1991년 팬택을 설립한다. 박병엽 회장은 그의 경력처럼 승부근성이 강한 돌진형 인물로 꼽힌다. 직장인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통신단말기사를 만든 것은 어쩌면 그런 카리스마 강한 그그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한 것일 수 있다. 

그는 신제품을 낼 때마다 애플과 삼성전자 경쟁 제품과 비교해서 로고를 떼면 제품력에서 이길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나온 제품들은 로고를 떼어도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팬택은 빠르게 움직여 지난 몇년간 사양면에서 앞선 제품을 애플과 삼성전자보다 먼저 내놓기도 했는데, 다른 업체들의 신제품이 등장하기 이전 몇개월간 신제품 효과를 누릴 수 가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수명주기가 짧아지면서 강점을 누리던 기간은 매우 짧아지고, 스마트폰 사양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경쟁우위도 점차 줄어들었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서 조금씩 입지를 확대해야하는데, 전면전을 통해 지속적인 인재와 자원 유실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버리고 육지로 나와 백병전을 벌였으면 이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 구입자 중 대부분이 제품 뿐 아니라 브랜드에 맹목적인 구매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팬택이 나름대로 단말기를 잘만드는 것은 알지만 주위 팬택 폰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중적인 취향보다는 개성이 강한 분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최상위 라인업간의 경쟁은 삼성전자와 애플에게 놔두고 그들이 서로의 전투에서 신경 쓰지 못하는 틈새 시장을 노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주목받는 중국의 샤오미가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판매형태, 홍보를 했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팬택도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지키면서 다른 전략을 써야 했는데,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기존 경쟁 방식에 뛰어들어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재미있는 것은 창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IT기업들이 대부분 이런 시련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악과 깡으로 창업자의 카리스마로 급격한 성장을 했지만, 기존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사업자와의 경쟁에서도 같은 방식을 택해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어느정도 규모가 되면 다른 기업에 M&A되던가, 전문기업인이 경영을 도와주는 형태가 아니라 창업자가 자신의 신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명량해전에는 이순신 장군만 부각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좋으면 CEO만이 조명을 받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회사를 구성하는 수 많은 가장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그 제품이 멋지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제품을 위해 단가 인하를 요구받았던 부품업체들, 제품 개발로 인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야근을 해야했던 개발자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팬택은 그동안 충분히 잘해줬다. 어떻게 이 규모와 인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매년 개발할 수 있었는지. 기적적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선택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붙어보고 싶다는 승부근성이 있는 많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열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회사를 떠난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팬택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직 두고봐야하겠지만, 그동안 그리도 앞으로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주실 수 많은 개발자에게 수고 했다고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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